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이었던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집이다. 류성룡 선생은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선생이 쓴『징비록』과『서애집』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 받고 있다.
충효당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손자인 졸재 류원지(1598∼1674)가 짓고, 증손자인 눌재 류의하(1616∼1698)가 확장 수리한 것이다. 행랑채는 8대손 일우 류상조(1763∼1838)가 지은 건물로 대문과 방, 광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을 앞면으로 긴 행랑채를 두고 안쪽으로 ㅁ자 모양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가 연이어 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들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왼쪽에서부터 사랑방, 대청마루, 방,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살림을 돌보던 공간으로 동북쪽에 부엌을 두고 ㄱ자로 꺾여서 안방, 대청, 건넌방이 있다. 또한 건넌방 앞에는 마루와 2칸의 온돌방, 부엌이 있으며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 대청에 걸려 있는 ‘충효당(忠孝堂)’이라고 쓴 현판은 명필가였던 허목(1595∼1682)이 쓴 것이라고 한다.
비교적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조선시대 민가 건축 연구에...
Read more서애 선생님 사후에 만들어진 충효당. 유교의 진리는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충효아닐까? 천재는 진리에 대해 단순하게 표현한다. 안에는 시원한 박물관이 있어 서애선생님의 일생을 알 수 있었다. 풍산류씨의 최고의 스타 서애 류성룡 선생님. 학식이며 인품을 따라올 자가 없었던 것이 지금도 느껴진다. 이순신은 전투에 이겼고 류성룡 선생때문에 임진왜란이란 전쟁에 이겼다는 말이 있다.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온 백성이 슬퍼하며 시장을 열지 않았다는 말이 있 듯 청렴한 성품에 존경받았던 조선사에 천재 중 천재. 이분 키는 180cm넘었다고...
Read more주말에 방문 하였습니다. 제방을 반쯤돌아 마을의 중심가쪽으로 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애 류성룡선생님의 생가로 우리나라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999년에 엘리자베스여왕님이 안동에 방문 하였을때 이 충효당에 들리셨고 그를 기념하여 나무를 심은게 입구 맞은편에 있습니다. 오래된 나무 건물 답지 않게 깔끔하여 사진을 찍을때도 잘 나와서 방문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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