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왕이 되고자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실권자에 의해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왕위를 양위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뜻과 무관하게 왕위를 다른 성씨를 가진 실권자에게 양위하여야만 했습니다. 그의 자리는 그러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가 죽음을 맞자 왕위를 가로챈 실권자는 그를 공양왕이라 불렀습니다. 공손할 공, 사양할 양. "공양"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뜻풀이한다면 왕위를 공손하게 사양하며 양위하였다는 뜻일 겁니다.
백제의 의자왕, 고구려의 보장왕, 신라의 경순왕, 고려의 공양왕, 조선의 순종. 이들은 5백년 이상 면면히 이어온 왕권을 다음 왕조에게 넘긴 비운의 군주입니다. 의자왕, 보장왕은 무력으로 저항하다 패망의 군주가 되어 당나라에서 최후를 마친 군주가 되었는가 하면 경순왕, 공양왕, 순종은 자의든 타의든 힘 한번 써 보지도 못하고 정권을 고스란히 넘긴 망국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의자왕, 보장왕을 제외한 신라의 경순왕, 고려의 공양왕, 조선의 순종 시호를 볼 것 같으면 경순왕의 경우 공경할 경, 순할 순. 즉 공경한 마음과 착한 마음으로 왕위를 스스로 바쳤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고려의 공양왕은 앞에서 설명했으므로 생략하겠습니다.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시호인 순수할 순은 순종의 정신지체 장애적 표현과 함께 순수한 마음으로 일본제국주의자에게 나라를 바친 국왕이란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잔인한 시호입니다.
어찌되었든 시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망국의 군주라는 오명도 부족하여 시호 조차도 치욕적인 시호를 부여하여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부여한 승자들의 기록을 공양왕릉을 본 후에야 그 뜻을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이에 더해 왕릉이라면 당연히 있어야할 제실과 홍살문은 커녕 문인석, 무인석, 망두석 조차 초라하기 그지없는 고려 마지막 왕의 릉을 둘러 본 후 망국의 서러움이 어떠한지 조금이나마 이해 해 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조선의 왕릉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공양왕릉 위로는 조선조 세도가들의 (안내문에는 공양왕의 외손들의 무덤이라 적혀 있습니다) 무덤이 층층이 자리하고 여기에 더해 상석, 문인석, 망두석은 물론이고 비석마져 공양왕릉을 능가하여 어느 무덤이 왕릉이고 어느 무덤이 사대부가 묘인지 구분하기 조차 힘듭니다. 이래저래 망국의 군주...
Read more공양왕은 고려의 마지막 임금으로, 이성계 일파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두 아들과 함께 불행한 죽음을 당했다.
현재 그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은 세 군데가 있다. 첫째가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 둘째가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세째가 강원도 고성군 간성읍 고성산 강릉 함씨 묘지이다.
그런데 간성 고성산의 공양왕 무덤은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로서는 그대로 믿기 어렵댜.
일반적으로 삼척에서 살해되어 가매장되었다가 나중에 고양으로 이장되었다고 보고 있다.
현재 고양에 있는 고양왕릉은 양반들의 무덤에 둘러싸여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얼핏 보면 왕릉인지조차도 알기 어렵다. 그가 '망국의 군주'였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접근성이 떨어지고,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주차가 다소 불편하다. 그래도 틈을 내서 꼭 들러보시라.
가능하면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신라 마지막 임금이었던 경순왕릉도 밤문하시기를 권한다. 그런 다음 두 비운의 군주가 죽은 뒤 어떤 대우를 받았으며, 왜 그러한 대우를 받있는지 비교하면서 생각해 보시라.
'실패의 역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를...
Read more사적 제191호 고양 공양왕릉 (高陽 恭讓王陵)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1345~1394,재위 1389∼1392)과 그의 부인 순비 노씨의 무덤이다. *대중교통:3호선 원당역 6번출구 건너편 두배로마트옆 원당역(57269)정류장 "마을버스038" 타고 왕릉골(19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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