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24 방문.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연천 촬영지 답사 일정 도중 짬이 생겨 근처에 있는 경순왕릉에 방문했다. 몇 년 전 근처에 있는 호로고루에 갔을 때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능이 주변에 있는 것을 알았지만 그떄는 가진 못했는데 이렇게 계획에 없이 우연한 기회로 방문하게 됐다. 이런 게 여행의 맛 아닐까 싶다.
신라의 56대 왕이자 마지막 왕, 경순왕. 대개 왕조의 마지막 왕이 겪는 수난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참하기 짝이 없는데 경순왕은 그러면서도 아니기도 한 양면적인 면이 있는 인물이었다.
역사적으로 왕조의 마지막에 이르면 그것이 정해진 운명이었을지, 아니면 수많은 인물들과 개별 사건들이 모여 일어난 결과였을지 모르지만 늘 혼란스러운 상황이 생긴다. 그때 마지막 왕에서 왕조가 끝나거나, 교체된다 해서 그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모든 사유들이 마지막 왕의 문제인 경우는 거의 없다. 이미 그보다 최소 2~3명의 이전 왕에서부터 문제들이 누적되고 해결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순왕 역시 마찬가지로 삼국시대를 끝내고 한반도를 통일한 강력한 왕조 신라의 왕이었음에도 이 무렵에 이르면 내부에서는 반란이 발생하고 외부에는 강력해지고 있는 견훤과 궁예라는 새로운 세력, 이어 왕건까지 발호하며 신라의 세력은 크게 위축되고 있어 머지 않아 왕조가 닫힐 운명이었다.
후삼국시대에 왕건의 고려, 견훤의 후백제가 한반도의 패권을 두고 싸우던 중 작아질대로 작아진 신라의 왕, 경순왕의 선택은 저항이 아닌 고려로의 투항이었다. 이후 경순왕은 왕건의 딸들과 결혼하며 자식을 낳았고 그 자식들이 계속해 번창하며 고려 내내, 이어 조선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가문이 되어 오늘날 경순왕은 상당히 많은 경주 김씨들의 시조로서 남아 있다.
아무튼 그러한 경순왕이 사망한 후 살고 있던 개경도 아니고, 또 원래 살았던 경주도 아닌 연천에 묻힌 것은 조금 의외의 일이다. 이를 설명하는 유력한 설은 경순왕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경주로 운구하던 중, 경주의 민심 이반을 우려한 고려에서 왕릉은 개경 100리 밖에는 쓸 수 없다고 하여 그때 이 자리(고랑포)에 경순왕의 무덤을 썼다는 것이다.
경순왕릉은 그 후 꽤 오랫동안 잊혀졌다가 영조 23년, 1747년에 묘지석을 찾아내 왕릉처럼 재정비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모습은 경주에 있는 신라왕릉보다는 조선왕릉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망국의 군주가 가진 몇 안되는 선택지 중 하나의 결과로서 지금까지 많은 후손이 남아 대략 1,100년 뒤 최대 성씨 집단 중 하나가 됐다는 것, 당시의 경순왕이 예상했을지 모르겠다.
또 무덤은 이곳 연천에 있지만 그가 신라의 마지막 왕으로서 경주에 묻히고 싶었을지, 망국의 군주이기에 경주에 묻히는 것을 부끄러워 했을지 잘 모르겠다.
경순왕릉은 다른 목적으로 여행하던 중 잠깐 들린 것이지만 11월 여행을 경주로 계획하고 있어서 적절한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주차는 왕릉으로 올라가는 길 바로 아래에 적당한 크기의 무료 주차장이...
Read moreVery peaceful location with wonderful views. Plenty of parking, clean bathrooms and well maintained. If you are in the area I...
Read more기대보다 둘러보기 좋아요. 조선 영조 때 다시 찾아서, 조산 왕릉 양식으로 복원되었다고 하네요.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927~935)의 묘입니다. 경애왕의 뒤를 이어 즉위할 당시에는 이미 국력이 쇠퇴해서 신라 각처에서 군웅이 할거하던 시기였습니다. 특히 후백제 견훤의 침략으로 영토가 날로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경순왕은 927년 을미년 고려 왕건에게 평화적으로 나라를 넘겨 준 후 왕위에서 무러났습니다. 고려 5대왕, 경종 3년(978년)에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세상을 떠나자 이곳에 능이 마련되었습니다.
경순왕릉은 신라의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주를 벗어나 고랑포 나루터 뒤편의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 쪽에 단독으로 위치하고 있다.
조선 영조 시기에 다시 찾게되어, 조선의 왕묘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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