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1년 불국사 석가탑이 지어진 후 신라 장인들은 고민에 빠졌다. 삼층석탑 양식이 철저하게 규정되어버린 것이다. 석가탑 그 자체로 완벽했기에 비례를 바꿔 더 근사한 탑을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요즘 아파트들처럼 이후 지어지는 탑은 크기 정도만 변형해 석가탑과 거의 비슷한 형태로 복제됐다. 전형style의 탄생이었다.
몇십 년 후 충주 지역에 통일신라의 상징물을 하나 만들어야 했던 장인은 과감한 결심을 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전형을 복제하되 층수를 늘리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석가탑과 비슷한 크기의 기단을 갖지만 높이는 1/3가량 늘어난 칠층석탑이 탄생했다.
석가탑은 하나, 둘, 셋 하고 외치면 끝나는 느낌을 가진 비례의 석탑이다. 반면 탑평리 칠층석탑은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하고 세어야 할 것 같다. 층이 바뀌면서 따라 변하는 체감율이 다른 탓이다. 무엇보다 이곳의 장인은 시선을 다르게 했다. 같은 높이의 지면에 서서 탑을 바라봐야 하는 석가탑과 달리, 충주에서는 언덕을 조성해 그 위에 탑을 쌓았다. 사람들은 탑보다 훨씬 낮은 곳에서 탑을 우러러 봐야 했다. 덕분에 칠층석탑은 하늘로 상승하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은 명작을 가만두지 못한다. 90년대 누군가 이 탑을 기리기 위해 주변을 조각공원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작가님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탑 주변에 놓인 대부분의 조각들은 칠층석탑의 발끝에도 이르지 못 하는 수준이다. 사족은...
Read moreYou can see over thousand years old pagoda in the part abd just beside of the park you can find river flowing. Alongside river, there is boat...
Read moreExplore the picturesque park along the river and experience its rich history on a memorable nighttime str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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