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천향리 석송령 천연기념물 제284호 Natural Monument No. 294
Seoksongnyeong Pine Tree in Cheonhyang-ri, Yecheon
석송령은 천향리 석평마을 입구에 있는 반송으로, 일명 "부자나무"라고 불린다. 석송령의 줄기둘레는 4.2m, 높이는 11m에 이른다. 마을 어른들이 어렸을 때도 수령이 600여 년 이었다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따라, 현재 수령은 약 7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1982년 문화재 지정당시 조사된 내용에 따르면, 600여 년 전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관을 따라 떠내려 오던 소나무 마을 사람이 건져 심었고, 그 후 1927 년에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이 나무에게 "석평마을의 영험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또 이수목은 본인이 소유한 토지 3.937㎡약1.191 상속해 주었는데, 그로 인해 자기 재산을 갖고 세금도 내는 "부자나무"라고 불리게 되었다. 석송령은 석평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지켜주는 동신목이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동제를 지내며, 나무가 소유한 토지 임대료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영험: 사람의 기원대로 되는 신기한 징조의 경험
동신목: 마을을 지키는 신으로 모시는 나무 "현재 석송령 소유 토지 6,248㎡(1,890평 정도) "
동제 마을을 지키는 신에게 공동 제사...
Read more사람들이 찾는 곳은 구체적인 흔적과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즉 눈을 자극해야 하고, 더불어 머리를 자극해야 한다. 흔적이라면 적어도 폐허라도 있어야 하고, 이야기는 흥미로울수록 좋다. 둘 중 하나만 있다면 아무래도 사람들 발길을 붙들기 힘들다. 석송령은 큰 나무다. 외진 곳이라 무심코 여기를 지나긴 힘들겠지만 아무 정보 없이 지나가더라도 나무 풍채에 절로 고개가 돌아간다. 나무 그늘이 대략 300평이라면 말 다했다. 어쨌든 눈이 돌아가게는 만든다. 다음은 이야기. 제법 흥미롭다. 600여년전 큰 홍수로 나무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물난리에 사람 살리는 게 제일 먼저고, 그 다음이 가축일 것이다. 나무에 누가 관심이나 둘까.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나무를 살려서 심었다. 제법 흥미롭다. 홍수에 떠내려가던 나무와 그 나무를 살린 사람의 이야기. 원래 구전이란 이야기에 이야기가 더해져 풍성해지는 법이다. 어렵게 살아난 나무니 생사의 우여곡절이 들어가야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일제강점기 때 나무로 배를 만들기 위해 이곳으로 오던 벌목공의 자전거가 부서졌다. 그렇게 이 나무는 또 살아남는다. 끼워맞춘 듯한 느낌도 들지만 어쨌든 재미있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1920년대 마을 사람 이수창이 오랫동안 행방불명된 아들을 찾아헤맸다. 아들 이름은 이수목. 아들을 찾지 못했고 이수창씨는 이 오래된 나무에 전재산을 기증하고 떠났다. 아름답고, 안타깝고, 신비한 이야기가 이 나무에 다 담겨 있다. 2010년 국내 최초 재산 보유 식물로 공식 인증을 받았고, 그 해 한국기록원은 세계 최초 재산 보유 식물로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5백만원을 이 나무에 기부한 사례도 전한다. 훗날 아들 이수목이 나타났고, 아버지의 유지를 그대로 받들었다 한다. 나무는 으리으리하고,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아직 제대로 꽃이 피진 못한 느낌이다. 아마...
Read more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 앞에는 오래된 반송이 한 그루 서 있다. 수령이 약 6백여 년이며 높이 10m, 둘레 4.2m, 동서의 길이는 32m이고 그늘 면적이 324평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좀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이 소나무가 하나의 인격체로 취급받고 있다는 점이다. 즉 이 나무의 성은 석(石)이요, 이름은 송령(松靈)이며, 이 나무 명의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데 예천군 토지대장에 등재된 등록번호는 3750-00248이라고 한다. 이 대장에 근거하여 종합토지세가 부과되고 또 납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어느 여름에 홍수가 져서 풍기골에서 마을 앞 개천으로 떠내려 오던 어린 소나무를 길가던 나그네가 건져 개천가에 심었는데 그 나무가 점점 자라서 크고 우람한 고목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마을사람들이 복을 비는 동신목이 되었다.
1920년대 말 이 마을에 이수목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자기 재산의 절반인 토지 1,191평을 이 나무에 바치면서 석송령이란 이름으로 등기해 주도록 유언을 했다고 한다. 이 유언에 따라 이 나무가 넓은 땅의 주인이 되었고 동네에서는 부자나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마을사람들은 석송령을 해치면 큰 벌을 받는 것으로 믿고 있으며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자시(子時)에 마을에서 뽑은 축관과 제관이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동신제를 올린다. 또 석송령 소나무가 소유한 토지에서 나오는 수익으로 해마다 이 동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