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왜구들의 침입이 빈번해지면서 이를 막기 위하여 현재의 굴항 부근에 구라량영(仇羅粱營)을 설치하였다. 조선조에 이르러 세종 때 구라량이 고성의 사도(蛇島)로 옮겨감에 따라 폐영(廢營) 되어 소규모의 선진(船鎭)으로 남아 있다가, 조선시대 말경 순조(1801∼1834년) 때 진주목 관하의 남해 창선도의 적량첨사(赤梁僉使)와의 군사연락과 왜구 방비를 위해 대방선진(大芳船鎭)을 설치하였다. 선진에는 병선의 정박지로 사용하기 위하여 둑을 쌓아 활처럼 굽은 만(彎)을 만들고 굴항(掘項)을 설치하였다. 굴항의 축조공사에는 진주관아 73개의 면민이 동원되어 1820년경에 완공하였으며, 굴항 북편에는 수군장이 거처하는 동헌과 많은 관사들이 있어 수군촌(水軍村)을 이루었고, 잡곡을 포함한 환향미(還鄕米) 2만여 섬을 저장한 선진창(船鎭倉)도 있었다.
현재는 새로이 복원된 모습이고 주민들이 선착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신기하네요 산책하기...
Read more잘알려지지 않은 명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명소라고 하기엔 좀 뭔가 아쉬운...그러나 상당이 특이한 항구 임에는 틀림없다. 사천케이블 관광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조용한 카페도 있어 나름 사색 하기 좋은곳 이다.
“삼천포 대방진 굴항(大芳鎭掘港)은 고려시대 말기에 동해 · 남해 연안을 빈번히 침범하던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만든 군항시설의 하나이다. 이곳은 왜구 침공 시 이를 물리치기 위해 설치한 구라량영(仇羅梁營) 소속으로서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주둔하고 있었으며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이 수군...
Read more이순신 장군의 수군 기지로도 이용되었으며 배를 숨기기 위한 장소입니다. 공간은 매우 신비롭고 평화로움 느낌을 줍니다. 오래된 나무도 곳곳에 우거져 있어요.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에 기본적인 정비만 이루어진다면 매우 아름다운 소공원이 될 수 있을거 같네요. 이미 거목 밑에 주민분들이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계시더라고요.
작은 공간이기에 일부러 이곳을 들리기엔 부담이 있으나 가는 길이라면 반드시 들려볼만한 곳입니다. 우연해 발견하게 되었는데 생각나서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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