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engnyeonsa Temple (백련사) located in Gangjin-gun, South Jeolla Province has long been a key temple in the restoration and revival of Buddhism Located on Mandoksan Mountain, it is known as the “beautiful temple of tea and camellias.” The path from the temple’s main entrance gate to the temple compound is bordered on both sides by a grove of camellia trees. Camellias begin to flower sparsely in early November, flower all through the winter, and come to full bloom in late March. It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two most beautiful camellia viewing spots in Korea. Ividoted on a beautiful autumn day, and there were only a few people around. The view of the sea is amazing. There are hiking trails around and a 900-meter walk to Dasan Chodang (Danan Jeong Yak-yong...
Read more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백련사에 대한 사적은 1432년(세종 13) 윤회(尹淮)가 저술한 『팔도지리지(八道地理志)』와 정약용(丁若鏞)의 『만덕사지(萬德寺誌)』 등에 나타나 있다.
만덕산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라고도 하였다. 이 절은 839년(문성왕 1) 무염(無染)이 창건하였으며, 중요한 수도도량으로 면모를 달리한 것은 1211년(희종 7) 요세(了世)가 크게 중창한 뒤부터이다.
요세는 천태종계(天台宗系)의 승려로서 고승 지눌(知訥)과 깊은 친분 속에서 지눌과 함께 송광사에 머물다가, 1208년에 천태종의 묘의(妙義)를 얻었고, 강진에 살고 있던 최표(崔彪)와 최홍(崔弘)·이인천(李仁闡) 등의 권유로 만덕산에 자리를 잡고 그의 제자 원영(元營)으로 하여금 가람 80칸을 짓게 하였다.
이 역사(役事)는 1211년부터 1232년(고종 19)까지 21년 만에 완공되었으며, 당시 목백(牧伯)이 지극한 정성으로 재물을 보시(布施)하였다고 한다. 절이 완공되자 요세는 보현도량(普賢道場)을 개설하고 실천 중심의 수행인들을 모아 결사(結社)를 맺었다. 이것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수선사(修禪社)와 쌍벽을 이루었던 백련사결사(白蓮社結社)이다.
그 뒤 이 절에서는 120년 동안을 이어 고려의 8국사(國師)를 배출하였다. 고려 말에는 강진지방이 세 차례의 왜구침입을 받았을 때 이 절도 함께 폐허화되었다. 조선 세종 때에는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보호를 받아 주지 행호(行乎)가 불타버린 가람을 복원하였다. 그 뒤 효종 때 3차 중수를 하였으며, 그때 탑과 사적비(事蹟碑)를 세웠다.
조계종이 송광사를 중심으로 하여 종세(宗勢)를 키우고 있을 때, 이 절은 천태사상에 입각한 결사도량(結社道場)을 개설하여 침체한 불교중흥을 꾀한 중심지 구실을 하였다. 그러나 외세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절 주위에 성을 쌓았는데, 이 성을 행호토성(行乎土城)이라고 한다. 현재의 절 또한 그때 쌓은 토성으로 둘러싸여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시왕전(十王殿)·나한전(羅漢殿)·만경루(萬景樓)·칠성각·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써 각 추녀마다 네 개의 활주(活柱)를 세워 건물을 받치고 있으며, 전면 두 개의 주두(柱頭)는 용두(龍頭)로 장식한 다포집 건물이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다. 또한 만경루는 규모가 큰 누각으로 강진만 일대의 바다를 환히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 밖의 사중유적(寺中遺蹟)으로는 만덕산 백련사사적비와 원묘국사중진탑(圓妙國師中眞塔)이 있다. 사적비의 거북은 앉은 키가 높은 편이고 용의 눈이 험상궂게 생긴 귀부(龜趺) 위에 비신(碑身)이 있으며, 그 위에 옥개석(屋蓋石) 모양을 한 가첨석(加檐石)이 놓여 있다. 중진탑은 방형의 지대석(地臺石)인 위에 연화문(蓮花文)의 중대석(中臺石)이 있으며, 상대석에도 무늬가 있으나 잘 보이지 않는다.
고복형(鼓腹形)의 옥신(屋身)에는 두 줄의 주렴문이 조각되어 있고,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상륜부에는 노반(露盤)·복발(覆鉢)·보주(寶珠)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절 주위에는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의 동백림과 정약용이 신유사옥 때 강진으로 귀양와서 조선의 실학을 집대성하고 차를 끊여 마시던 다산초당(茶山草堂)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서는 백련사를 가리켜 ‘남쪽바다에 임해 있고 골짜기 가득히 송백이 울창하여 동백 또한 곁들여서 수목이 싱싱하게 푸른 모습이 사계절을 통해 한결같은 절경’이라고 한만큼, 주위의 경관 또한...
Read more만덕산 백련사라 쓴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들어서니 빼곡히 들어선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룹니다. 동백꽃은 피지 않았지만 넓고 윤기가 나는 동백잎은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길을 걸어 백련사와 다산 정약용, 그리고 혜장스님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백련사 동백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되었는데 3,000여평에 달하는 동백나무 숲에는 옛 스님의 승탑 4기가 흩어져 숨어 있습니다. 시간이 주어진다면 승탑을 찾아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겠지만 정해진 시간에 여행을 마쳐야 할 나그네 입장에선 한 낮 배부른 푸념에 불과합니다.
동백숲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낮은 돌계단을 올라서야 만경루에 닿을 수 있습니다. 만경루 아래로 난 돌계단을 딛고 오르면 드디어 대웅보전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백련사 대웅보전은 두개의 목판에 세로로 대웅, 보전이라 쓴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습니다. 현판의 글자체는 '고산 윤선도 유물관'에서 확인했는데 이 현판 글자체가 동국진체라 한답니다.
동국진체는 해남 대륜산 대흥사에서 익히 확인한 바 있었는데 동국진체 글자체를 두고 제주도로 유배가던 추사 김정희가 동국진체에 대한 혹독한 비평과 원교 이광사가 쓴 대웅보전 현판을 내렸다가 다시 걸린 사연을 대흥사 대웅보전 앞에 설치된 설명 현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백련사 대웅보전 내에는 장구치는 천녀, 하늘 부처님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도량을 지키는 영수 봉황과 사자가 해학적으로 조각되어 있으며(주지스님이 법문을 하시는 동안 밖에서 줌을 최대한 당겨 찍었습니다) 사람의 다리를 하고 있는 가릉빈가(가릉빈가는 상체는 사람의 모습을 갖추고 하체는 새의 모습을 가진 인두조신의 형상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져 있습니다), 도끼를 물고 있는 용 등이 있습니다.
조성한지 얼마 되지않은 듯한 응진당 현판 밑에는 상상의 흰코끼리상으로 판단되는 그림이 조각되어 있어 사찰 내부를 관찰하는 재미가 솔솔합니다. 응진당 앞에는 유난히 붉은색을 띤 거북등을 한 용머리 비석 받침대를 한 백련사 사적비가 새로이 지은 누각의 보호를 받아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외 오래된 배롱나무가 눈에 띠는 그런 백련사입니다.
백련사 대웅보전에 서서 강진만에 떠 있는 듯한 작은 섬과 구강포, 섬을 한바퀴 돌아 나올 수 있는 가우도 출렁다리를 조망한 후 다산 정약용을 만나러 이제 출발해야 할 시간입니다.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녹차 밭을 지나며 다산 초당으로 난 산 길을 부지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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