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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hae German Village — Attraction in South Gyeongsang

Name
Namhae German Village
Description
Namhae German Village is an ethnic enclave located in Samdong-myeon, Namhae County, South Gyeongsang Province, South Korea. It is populated by both Germans in South Korea and South Koreans who worked in Germany as migrant workers during the 1960s and 1970s.
Nearby attractions
Nearby restaurants
남해어부림
1126 Dongbu-daero,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모스트화덕피자
South Korea, Gyeongsangnam-do, Namhae-gun, 삼동면 봉화리 1131-1
Beogeobong
1132 Bonghwa-ri,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알핀로제
산273 Bonghwa-ri,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ChonNom Bob Sang (Contryman's dining table)
Namhae, South Korea
동천식당
1029-1 Dongcheon-ri,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남해섬쌈밥
300-15 Mulgeon-ri,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우주총동원
300 Mulgeon-ri,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피자앤모어
231-11번지 Mulgeon-ri,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유즈노모레
104 Dongbu-daero 1030beon-gil,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Nearby hotels
Southern German town Neuhaus
64-11 Dogil-ro,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뮌헨하우스
75 Dogil-ro,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Schwerin Pension
61-43 Dogil-ro,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Cello Pension
1153 Dongbu-daero,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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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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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hae German Village
South KoreaSouth GyeongsangNamhae German Village

Basic Info

Namhae German Village

1154 Mulgeon-ri, Samdong-myeon, Namhae-gun, Gyeongsangnam-do, South Korea
4.0(2.3K)
Open 24 h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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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

Ratings & Description

Info

Namhae German Village is an ethnic enclave located in Samdong-myeon, Namhae County, South Gyeongsang Province, South Korea. It is populated by both Germans in South Korea and South Koreans who worked in Germany as migrant workers during the 1960s and 1970s.

Cultural
Outdoor
Family friendly
attractions: , restaurants: 남해어부림, 모스트화덕피자, Beogeobong, 알핀로제, ChonNom Bob Sang (Contryman's dining table), 동천식당, 남해섬쌈밥, 우주총동원, 피자앤모어, 유즈노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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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55-867-8897
Website
남해독일마을.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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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Things to do nearby

Local food cooking class made with ingredients from the Namhae Sea in a kitchen overlooking the sea-In English mode
Local food cooking class made with ingredients from the Namhae Sea in a kitchen overlooking the sea-In English mode
Sun, Dec 14 • 11:30 AM
South Gyeongsang Province, Namhae-gun, 52441, South Korea
View details

Nearby restaurants of Namhae German Village

남해어부림

모스트화덕피자

Beogeobong

알핀로제

ChonNom Bob Sang (Contryman's dining table)

동천식당

남해섬쌈밥

우주총동원

피자앤모어

유즈노모레

남해어부림

남해어부림

3.1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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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트화덕피자

모스트화덕피자

3.6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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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ogeobong

Beogeobong

3.4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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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핀로제

알핀로제

4.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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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 of Namhae German Village

4.0
(2,348)
avatar
3.0
2y

A German town in Korea sounds very unique, but I personally think that was pretty much the whole extent of its character. Despite its history and name, I didn't find much resemblance of a Deutsche Berg. I guess this popular attraction transformed itself into a Korean attraction that sells a lot of food and items of German names. The whole town is surrounded by beautiful mountain landscape, but the much of Nam Hae island is beautiful. The food is nothing like the ones I tasted in Munich or Frankfurt. There was not enough parking and too many people. Everything was sooooo expensive. My family had some snacks, juice, and ice cream, took photos, and got out of there quickly. If you want to visit, keep your expectations low. Personally, I think you will find much more satisfaction with other parts in Nam Hae Island. Nevertheless, it will be a not so German Town 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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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41w

2025.2.9 방문. 사천 남해 여행 일정의 첫 방문지는 독일마을로 결정했다. 출발 시점이 오후 4시 쯤이었기 때문에 후보지가 많지는 않았는데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고 오후 늦게까지 있을만한 곳을 생각해보니 독일마을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다.

오후 5시쯤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해도 슬슬 지고 있고 이곳이 앞으로 뒤로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인지 바람 때문에 꽤 추웠다. 전국적으로 며칠간 지속된 한파로 추울 때이긴 했어도 남해는 남쪽이라 괜찮겠지 했다가 생각외로 추워서 남해라도 칼바람은 장난이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 위에 있는 독일마을광장에 있는 파독전시관에 갔더니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가볼 수는 없었고 대신 전시관 맞은편 건물에 약간의 자료들과 함께 마을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를 설명하는 공간이 있어 간략히 둘러볼 수 있었다.

남해에 독일마을이 생기게 된 계기는 대략 이러했다. 1990년대 말에 남해군은 남해의 따뜻한 기후를 활용한 스포츠 마케팅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독일에서 잔디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남해군의 공무원들이 독일에 출장을 자주 갔는데 공무원들의 출장을 도와줬던 현지 교민, 과거 파독 근로자들이 남해에 독일마을을 조성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남해군에서 수요 조사를 해보니 가능성이 보여 현재 위치에 2001년부터 공사를 시작, 2005년 전후로 지금의 독일마을이 됐다.

독일마을을 만드는 큰 비용은 정부의 예산에서 나오긴 했지만 이곳에 정착하기로 한 파독 근로자들도 남해군이 분양한 땅을 매입하고 독일식으로 집을 짓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독일에서 자재를 공수해오는 등 비용을 꽤 들인 것 같다. 이렇게 독일식 집이 하나둘 생겨나며 현재의 민박집, 일반 가정집 등 총 50여개의 집이 모인 남해독일마을이 된 것이다.

초기에는 마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독일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만 입주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마을이 생긴지도 20년이 넘어 처음같은 정체성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는지 일반인도 입주했다고 한다. 아마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 최초에 입주했던 파독 근로자들은 더이상 없을테니 그러기 전에 효율적으로 변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현재는 17명이 살고 있다고 하며 독일인도 4명 살고 있다고 한다.)

광장에서 마을 아래 방향로 쭉 내려가니 길가에 있는 독일식 집 몇몇에 설명판이 있었다. 알프스하우스, 빌라콜로니아, 하이디하우스 같은 독일 느낌나는 작명을 한 집들이었는데 그 집에 누가 살고 있고, 언제 독일에 갔으며, 마을은 언제 입주했는지 등등 대략의 내용들이 적혀 있어 처음에 마을을 만들 당시의 컨셉과 아이디어가 참 좋았다고 느꼈다.

독일마을은 대부분 민박집과 일반 가정집으로 구성돼있고 주 도로 근처에만 약간의 상업적 공간이 있었다. 그중 독일집이라는 공방이 있어 들어가보니 작은 소품들을 팔고 있어 키링과 마그넷을 샀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것인데 일대 전부가 독일마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을 중간쯤까지 내려가니 튀빙엔이라는 독일집 앞에 독일마을이라는 표석이 있고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돼있어서 왜 여기서 마을이 끝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딱 거기까지가 독일마을이었고 그 아래에 있는 식당과 카페, 빵집, 독일수입품 판매점 등은 독일마을과 독일식 컨셉을 맞춰가고 있는 별개의 상업 시설들이었다. 독일마을이 만들어진 후 자생적으로 하나둘 생긴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주거지와 상업 시설을 분리해서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그랬다.

독일마을에서 저녁 식사까지 하고 갈 생각으로 갔기 때문에 그중 한 식당에 들려 식사까지 했다.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밝을 때에는 몰랐는데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어 실제로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중에 찾아보니 남해독일마을의 민박집들 중 대부분이 '마을호텔'이라는 개념의 숙소로 전환된 것을 알게 됐는데(https://german-village.kr/hotel-list) 날이 좋을 계절에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파독 근로자들이 주거 목적으로 지은 집들이기 때문에 입지, 외관, 구조가 모두 다를텐데 그게 또 매력일 것 같기도 하고.

주차는 독일마을 상부 공간에 주차장이 조성돼 있었으며 그곳에 독일마을광장도 같이 있었다. 또 주차장 건너편에는 원예예술촌이 있어 시간만 맞추면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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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4y

남해도를 한바퀴 둘러보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남해라면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곳이 이순신장군과 관련한 역사 탐방지 충렬사와 이순신순국 유허지. 다음으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남해대교 건설과 광부, 간호사의 서독 인력송출입니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역사적 기록과 유적에 대한 글은 가는 곳마다 올렸으므로 생략하고 이곳 독일 마을에서는 우리나라 현대사와 관련한 글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독일마을. 외관은 독일풍의 이국적 풍광에 멋스런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마을의 속살을 한꺼풀 벗기고 살펴보면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을 곳입니다.

신생 독립국이었던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 걸음걸이조차 제대로 옮기지도 못했던 나라에서 20세기 최대의 비극이라 할 한국동란이 발생합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되었던지 어느 종군기자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평하기를 잿더미 속에서 장미를 구하는 일보다 더 어려울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공공연히 들어야만 했었던 대한민국.

그 지경에서 한 푼이라도 외화를 벌어들여야만 했었던 1960년대. 가진 것이라고는 젊은 패기와 튼튼한 육신만 있을 뿐입니다. 당시 파독 광부 모집공고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구름때처럼 몰려들었다는데 면접시험 중 하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쌀가마니 들어 올리기 테스트도 있었다고 합니다. 간호사 모집공고에도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으나 일일이 글로 남기지는 않겠습니다.

광부로 간호사로 파독된 해외인력송출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뒤이은 월남전 참전과 파병, 중동국가 건설현장 노동자로의 인력송출 등등등. 이 모든 외화벌이가 경부고속도로가 되었고 포항제철이 되었으며 자동차생산과 조선업 기초를 다지는 등 국가 기간산업이 되고 중화학공업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서독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를 위문하기 위해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대통령의 연설은 참석한 모든 이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는데 그 연설은 지금 들어도 가슴 뭉클하게 하는 명연설이었습니다. 그런 가슴아린 사연이 담긴 곳이 독일마을인데 전후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당시의 사정을 도외시한 채 현재의 기준과 가치관으로 과거를 재단하거나 또는 특정 정파의 편향된 시각으로 과거를 비판하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라 생각합니다.

수십년이 지나 살만해진 대한민국에 코리안드림을 안고 우리나라를 찾는 해외에서 온 산업인력을 보고 있노라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참고로 1960년대 초 우리나라 1인당 GNP가 70불, 북한은 남한의 3배인 240불, 필리핀은 우리나라의 10배인 700~800불이었고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등 중남미국가들은 중진국 반열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대한민국 32,000불, 필리핀 3,000불, 북한 약1,200불(추정), 아르헨티나 약 10,000불, 우루과이 약 16,000불

이런데도 스스로 자평하기를 헬조선인가? 젊은이에게 꿈을 심어주지 못할망정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사고만 심어주는 이들은 과연 어떤 사상의 소유자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한편 대한민국 여권으로 해외를 나가보면 대한민국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한국을 얕보는 시각으로 보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굳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가 몸을 낮춰 굴종적으로 떠받드는 중국 공산당 수뇌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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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ChiChang Chi
A German town in Korea sounds very unique, but I personally think that was pretty much the whole extent of its character. Despite its history and name, I didn't find much resemblance of a Deutsche Berg. I guess this popular attraction transformed itself into a Korean attraction that sells a lot of food and items of German names. The whole town is surrounded by beautiful mountain landscape, but the much of Nam Hae island is beautiful. The food is nothing like the ones I tasted in Munich or Frankfurt. There was not enough parking and too many people. Everything was sooooo expensive. My family had some snacks, juice, and ice cream, took photos, and got out of there quickly. If you want to visit, keep your expectations low. Personally, I think you will find much more satisfaction with other parts in Nam Hae Island. Nevertheless, it will be a not so German Town in Korea experience.
beneruxbenerux
2025.2.9 방문. 사천 남해 여행 일정의 첫 방문지는 독일마을로 결정했다. 출발 시점이 오후 4시 쯤이었기 때문에 후보지가 많지는 않았는데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고 오후 늦게까지 있을만한 곳을 생각해보니 독일마을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다. 오후 5시쯤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해도 슬슬 지고 있고 이곳이 앞으로 뒤로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인지 바람 때문에 꽤 추웠다. 전국적으로 며칠간 지속된 한파로 추울 때이긴 했어도 남해는 남쪽이라 괜찮겠지 했다가 생각외로 추워서 남해라도 칼바람은 장난이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 위에 있는 독일마을광장에 있는 파독전시관에 갔더니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가볼 수는 없었고 대신 전시관 맞은편 건물에 약간의 자료들과 함께 마을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를 설명하는 공간이 있어 간략히 둘러볼 수 있었다. 남해에 독일마을이 생기게 된 계기는 대략 이러했다. 1990년대 말에 남해군은 남해의 따뜻한 기후를 활용한 스포츠 마케팅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독일에서 잔디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남해군의 공무원들이 독일에 출장을 자주 갔는데 공무원들의 출장을 도와줬던 현지 교민, 과거 파독 근로자들이 남해에 독일마을을 조성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남해군에서 수요 조사를 해보니 가능성이 보여 현재 위치에 2001년부터 공사를 시작, 2005년 전후로 지금의 독일마을이 됐다. 독일마을을 만드는 큰 비용은 정부의 예산에서 나오긴 했지만 이곳에 정착하기로 한 파독 근로자들도 남해군이 분양한 땅을 매입하고 독일식으로 집을 짓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독일에서 자재를 공수해오는 등 비용을 꽤 들인 것 같다. 이렇게 독일식 집이 하나둘 생겨나며 현재의 민박집, 일반 가정집 등 총 50여개의 집이 모인 남해독일마을이 된 것이다. 초기에는 마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독일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만 입주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마을이 생긴지도 20년이 넘어 처음같은 정체성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는지 일반인도 입주했다고 한다. 아마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 최초에 입주했던 파독 근로자들은 더이상 없을테니 그러기 전에 효율적으로 변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현재는 17명이 살고 있다고 하며 독일인도 4명 살고 있다고 한다.) 광장에서 마을 아래 방향로 쭉 내려가니 길가에 있는 독일식 집 몇몇에 설명판이 있었다. 알프스하우스, 빌라콜로니아, 하이디하우스 같은 독일 느낌나는 작명을 한 집들이었는데 그 집에 누가 살고 있고, 언제 독일에 갔으며, 마을은 언제 입주했는지 등등 대략의 내용들이 적혀 있어 처음에 마을을 만들 당시의 컨셉과 아이디어가 참 좋았다고 느꼈다. 독일마을은 대부분 민박집과 일반 가정집으로 구성돼있고 주 도로 근처에만 약간의 상업적 공간이 있었다. 그중 독일집이라는 공방이 있어 들어가보니 작은 소품들을 팔고 있어 키링과 마그넷을 샀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것인데 일대 전부가 독일마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을 중간쯤까지 내려가니 튀빙엔이라는 독일집 앞에 독일마을이라는 표석이 있고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돼있어서 왜 여기서 마을이 끝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딱 거기까지가 독일마을이었고 그 아래에 있는 식당과 카페, 빵집, 독일수입품 판매점 등은 독일마을과 독일식 컨셉을 맞춰가고 있는 별개의 상업 시설들이었다. 독일마을이 만들어진 후 자생적으로 하나둘 생긴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주거지와 상업 시설을 분리해서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그랬다. 독일마을에서 저녁 식사까지 하고 갈 생각으로 갔기 때문에 그중 한 식당에 들려 식사까지 했다.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밝을 때에는 몰랐는데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어 실제로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중에 찾아보니 남해독일마을의 민박집들 중 대부분이 '마을호텔'이라는 개념의 숙소로 전환된 것을 알게 됐는데(https://german-village.kr/hotel-list) 날이 좋을 계절에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파독 근로자들이 주거 목적으로 지은 집들이기 때문에 입지, 외관, 구조가 모두 다를텐데 그게 또 매력일 것 같기도 하고. 주차는 독일마을 상부 공간에 주차장이 조성돼 있었으며 그곳에 독일마을광장도 같이 있었다. 또 주차장 건너편에는 원예예술촌이 있어 시간만 맞추면 모두 다 볼 수 있을 듯 했다.
설주설주
남해도를 한바퀴 둘러보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남해라면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곳이 이순신장군과 관련한 역사 탐방지 충렬사와 이순신순국 유허지. 다음으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남해대교 건설과 광부, 간호사의 서독 인력송출입니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역사적 기록과 유적에 대한 글은 가는 곳마다 올렸으므로 생략하고 이곳 독일 마을에서는 우리나라 현대사와 관련한 글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독일마을. 외관은 독일풍의 이국적 풍광에 멋스런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마을의 속살을 한꺼풀 벗기고 살펴보면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을 곳입니다. 신생 독립국이었던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 걸음걸이조차 제대로 옮기지도 못했던 나라에서 20세기 최대의 비극이라 할 한국동란이 발생합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되었던지 어느 종군기자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평하기를 잿더미 속에서 장미를 구하는 일보다 더 어려울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공공연히 들어야만 했었던 대한민국. 그 지경에서 한 푼이라도 외화를 벌어들여야만 했었던 1960년대. 가진 것이라고는 젊은 패기와 튼튼한 육신만 있을 뿐입니다. 당시 파독 광부 모집공고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구름때처럼 몰려들었다는데 면접시험 중 하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쌀가마니 들어 올리기 테스트도 있었다고 합니다. 간호사 모집공고에도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으나 일일이 글로 남기지는 않겠습니다. 광부로 간호사로 파독된 해외인력송출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뒤이은 월남전 참전과 파병, 중동국가 건설현장 노동자로의 인력송출 등등등. 이 모든 외화벌이가 경부고속도로가 되었고 포항제철이 되었으며 자동차생산과 조선업 기초를 다지는 등 국가 기간산업이 되고 중화학공업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서독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를 위문하기 위해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대통령의 연설은 참석한 모든 이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는데 그 연설은 지금 들어도 가슴 뭉클하게 하는 명연설이었습니다. 그런 가슴아린 사연이 담긴 곳이 독일마을인데 전후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당시의 사정을 도외시한 채 현재의 기준과 가치관으로 과거를 재단하거나 또는 특정 정파의 편향된 시각으로 과거를 비판하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라 생각합니다. 수십년이 지나 살만해진 대한민국에 코리안드림을 안고 우리나라를 찾는 해외에서 온 산업인력을 보고 있노라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참고로 1960년대 초 우리나라 1인당 GNP가 70불, 북한은 남한의 3배인 240불, 필리핀은 우리나라의 10배인 700~800불이었고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등 중남미국가들은 중진국 반열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대한민국 32,000불, 필리핀 3,000불, 북한 약1,200불(추정), 아르헨티나 약 10,000불, 우루과이 약 16,000불 이런데도 스스로 자평하기를 헬조선인가? 젊은이에게 꿈을 심어주지 못할망정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사고만 심어주는 이들은 과연 어떤 사상의 소유자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한편 대한민국 여권으로 해외를 나가보면 대한민국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한국을 얕보는 시각으로 보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굳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가 몸을 낮춰 굴종적으로 떠받드는 중국 공산당 수뇌부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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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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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2.9 방문. 사천 남해 여행 일정의 첫 방문지는 독일마을로 결정했다. 출발 시점이 오후 4시 쯤이었기 때문에 후보지가 많지는 않았는데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고 오후 늦게까지 있을만한 곳을 생각해보니 독일마을이 가장 무난한 선택이었다. 오후 5시쯤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해도 슬슬 지고 있고 이곳이 앞으로 뒤로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인지 바람 때문에 꽤 추웠다. 전국적으로 며칠간 지속된 한파로 추울 때이긴 했어도 남해는 남쪽이라 괜찮겠지 했다가 생각외로 추워서 남해라도 칼바람은 장난이 아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차장 위에 있는 독일마을광장에 있는 파독전시관에 갔더니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가볼 수는 없었고 대신 전시관 맞은편 건물에 약간의 자료들과 함께 마을에 대한 대략적인 개요를 설명하는 공간이 있어 간략히 둘러볼 수 있었다. 남해에 독일마을이 생기게 된 계기는 대략 이러했다. 1990년대 말에 남해군은 남해의 따뜻한 기후를 활용한 스포츠 마케팅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독일에서 잔디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남해군의 공무원들이 독일에 출장을 자주 갔는데 공무원들의 출장을 도와줬던 현지 교민, 과거 파독 근로자들이 남해에 독일마을을 조성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남해군에서 수요 조사를 해보니 가능성이 보여 현재 위치에 2001년부터 공사를 시작, 2005년 전후로 지금의 독일마을이 됐다. 독일마을을 만드는 큰 비용은 정부의 예산에서 나오긴 했지만 이곳에 정착하기로 한 파독 근로자들도 남해군이 분양한 땅을 매입하고 독일식으로 집을 짓는 가이드라인을 따라 독일에서 자재를 공수해오는 등 비용을 꽤 들인 것 같다. 이렇게 독일식 집이 하나둘 생겨나며 현재의 민박집, 일반 가정집 등 총 50여개의 집이 모인 남해독일마을이 된 것이다. 초기에는 마을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독일에서 20년 이상 거주한 사람들만 입주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마을이 생긴지도 20년이 넘어 처음같은 정체성을 유지하기는 힘들었는지 일반인도 입주했다고 한다. 아마 앞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 최초에 입주했던 파독 근로자들은 더이상 없을테니 그러기 전에 효율적으로 변할 필요는 있어 보였다.(현재는 17명이 살고 있다고 하며 독일인도 4명 살고 있다고 한다.) 광장에서 마을 아래 방향로 쭉 내려가니 길가에 있는 독일식 집 몇몇에 설명판이 있었다. 알프스하우스, 빌라콜로니아, 하이디하우스 같은 독일 느낌나는 작명을 한 집들이었는데 그 집에 누가 살고 있고, 언제 독일에 갔으며, 마을은 언제 입주했는지 등등 대략의 내용들이 적혀 있어 처음에 마을을 만들 당시의 컨셉과 아이디어가 참 좋았다고 느꼈다. 독일마을은 대부분 민박집과 일반 가정집으로 구성돼있고 주 도로 근처에만 약간의 상업적 공간이 있었다. 그중 독일집이라는 공방이 있어 들어가보니 작은 소품들을 팔고 있어 키링과 마그넷을 샀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것인데 일대 전부가 독일마을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을 중간쯤까지 내려가니 튀빙엔이라는 독일집 앞에 독일마을이라는 표석이 있고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돼있어서 왜 여기서 마을이 끝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니 딱 거기까지가 독일마을이었고 그 아래에 있는 식당과 카페, 빵집, 독일수입품 판매점 등은 독일마을과 독일식 컨셉을 맞춰가고 있는 별개의 상업 시설들이었다. 독일마을이 만들어진 후 자생적으로 하나둘 생긴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주거지와 상업 시설을 분리해서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그랬다. 독일마을에서 저녁 식사까지 하고 갈 생각으로 갔기 때문에 그중 한 식당에 들려 식사까지 했다.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니 밝을 때에는 몰랐는데 집집마다 불이 켜져 있어 실제로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중에 찾아보니 남해독일마을의 민박집들 중 대부분이 '마을호텔'이라는 개념의 숙소로 전환된 것을 알게 됐는데(https://german-village.kr/hotel-list) 날이 좋을 계절에 이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원래 파독 근로자들이 주거 목적으로 지은 집들이기 때문에 입지, 외관, 구조가 모두 다를텐데 그게 또 매력일 것 같기도 하고. 주차는 독일마을 상부 공간에 주차장이 조성돼 있었으며 그곳에 독일마을광장도 같이 있었다. 또 주차장 건너편에는 원예예술촌이 있어 시간만 맞추면 모두 다 볼 수 있을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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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도를 한바퀴 둘러보는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남해라면 가장 먼저 손꼽을 수 있는 곳이 이순신장군과 관련한 역사 탐방지 충렬사와 이순신순국 유허지. 다음으로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남해대교 건설과 광부, 간호사의 서독 인력송출입니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역사적 기록과 유적에 대한 글은 가는 곳마다 올렸으므로 생략하고 이곳 독일 마을에서는 우리나라 현대사와 관련한 글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독일마을. 외관은 독일풍의 이국적 풍광에 멋스런 맛이 있습니다. 그러나 독일마을의 속살을 한꺼풀 벗기고 살펴보면 그렇게 낭만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을 곳입니다. 신생 독립국이었던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 걸음걸이조차 제대로 옮기지도 못했던 나라에서 20세기 최대의 비극이라 할 한국동란이 발생합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파괴되었던지 어느 종군기자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평하기를 잿더미 속에서 장미를 구하는 일보다 더 어려울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공공연히 들어야만 했었던 대한민국. 그 지경에서 한 푼이라도 외화를 벌어들여야만 했었던 1960년대. 가진 것이라고는 젊은 패기와 튼튼한 육신만 있을 뿐입니다. 당시 파독 광부 모집공고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구름때처럼 몰려들었다는데 면접시험 중 하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쌀가마니 들어 올리기 테스트도 있었다고 합니다. 간호사 모집공고에도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으나 일일이 글로 남기지는 않겠습니다. 광부로 간호사로 파독된 해외인력송출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뒤이은 월남전 참전과 파병, 중동국가 건설현장 노동자로의 인력송출 등등등. 이 모든 외화벌이가 경부고속도로가 되었고 포항제철이 되었으며 자동차생산과 조선업 기초를 다지는 등 국가 기간산업이 되고 중화학공업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입니다. 서독으로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를 위문하기 위해 서독을 방문한 박정희대통령의 연설은 참석한 모든 이들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는데 그 연설은 지금 들어도 가슴 뭉클하게 하는 명연설이었습니다. 그런 가슴아린 사연이 담긴 곳이 독일마을인데 전후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당시의 사정을 도외시한 채 현재의 기준과 가치관으로 과거를 재단하거나 또는 특정 정파의 편향된 시각으로 과거를 비판하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라 생각합니다. 수십년이 지나 살만해진 대한민국에 코리안드림을 안고 우리나라를 찾는 해외에서 온 산업인력을 보고 있노라면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참고로 1960년대 초 우리나라 1인당 GNP가 70불, 북한은 남한의 3배인 240불, 필리핀은 우리나라의 10배인 700~800불이었고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등 중남미국가들은 중진국 반열에 있었는데 지금은 어떠한가? 대한민국 32,000불, 필리핀 3,000불, 북한 약1,200불(추정), 아르헨티나 약 10,000불, 우루과이 약 16,000불 이런데도 스스로 자평하기를 헬조선인가? 젊은이에게 꿈을 심어주지 못할망정 비관적이고 자조적인 사고만 심어주는 이들은 과연 어떤 사상의 소유자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한편 대한민국 여권으로 해외를 나가보면 대한민국을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한국을 얕보는 시각으로 보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굳이 있다면 우리 스스로가 몸을 낮춰 굴종적으로 떠받드는 중국 공산당 수뇌부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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