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대교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도시가스교차로에서 출발하여 해운대구 우동 센텀시티에서 끝나는 교량. 66번 부산광역시도와 77번 부산광역시도의 일부이며 전구간 자동차전용도로라 이륜자동차는 통행이 금지되며 노선버스 또한 입석이 금지된다.
건설 사업비로는 총 7,899억원(시비 5,097억원, 국비 2,802억원)이 투입되었다.
총길이 7,420m 중 현수교 구간은 900m, 최대경간장은 500m이다. 또한 전 구간 제한속도 80km/h이다.
다리설계는 유신코퍼레이션, 설계검토 및 구조해석은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三菱重工業) 주식회사 쵸다이((株)長大), 시공은 대림산업, 삼환기업, 포스코건설, 롯데건설, 대우건설 등이 하였다.
계획
광안대교는 해운대신시가지 진입도로 확보, 늘어나는 도심의 차량정체를 해소, 부산항 화물 물동량 분산 등의 우회도로 목적으로 단층구조 콘크리트 다리의 왕복 4차선으로 건설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해운대신도시, 해운대 및 기장 일대의 동부산이 개발될 것을 예상하고 단층구조 콘크리트교 4차선에서 복층구조 현수교 8차선으로 설계를 바꿨지만 시작부터 쉽지가 않았다.
당시에는 남구 남천동, 광안동, 민락동 주민들은 차량 소음과 매연, 경관을 망친다는 이유로 건설을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특히 남천동 해안가는 높으신 분들이 사는 부촌이어서 협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연일 광안대교 건설의 부정적인 목소리를 높였었다. 시에서도 예산 등을 이유로 반발을 하는 까닭에 설득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1년 넘게 반대가 너무 심해 광안대교 건설 계획이 폐기될 뻔 했었지만 당시 광안대교 건설 담당 공무원이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하고 회의한 덕분에 광안대교를 포함 해상순환도로 건설계획이 확정되었다.
한마디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어렵게 시작한 까닭에 건설 전 부터 매우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당시 담당 공무원들은 100년~200년 동안 문제없는 교량으로 설계하고 광안대교를 세계적인 명물로 만들기로 계획을 새워 세계의 유명한 교량을 확인하러 직접 시찰을 나가고 당시 생소한 풍동설계와 내진설계를 연구까지 할 정도였다.
또한 광안대교는 해상 위에 위치해 있어 페인트 선택에도 반발이 심했었다. 담당 공무원들은 녹이 슬지 않는 특수도료의 페인트를 찾아내어 도입을 했었다. 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페인트를 전혀 사용한 적이 없다보니 건설회사와 도색업자들의 반발이 심했었다. 도색하기 너무 까다로워 도색하기 쉬운 일반 페인트로 바꿔달라고 주장했으며 일각에서는 특정 업체의 비리의혹까지 나오기도 했다. 담당 공무원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한 덕분에 특수도료 페인트를 사용하기로 결정이 났다. 덕분에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녹이 슬지 않았으며 만약 끝까지 반발하고 설득에 실패해 일반 페인트를 칠했다면 거대한 흉물이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구조
처음에는 진도 8의 내진에 맞춰 해저 중질암에 다릿발을 세우려고 하였으나, 착공 당시 발생한 고베 대지진을 보고 공사관계자가 리히터 규모 6.3~7.0의 지진(진도 9), 최대 풍속 45m/s (10분 평균), 3초 순간 78m/s 와 7m의 파고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를 수정하여 다릿발을 연암(軟巖)이라는 바위의 상부 1.5m를 파내고 지었다고 한다. 타산지석
2층 복층구조다. 다만 상판이 해운대에서 남천동, 용호동, 대연동 방면이며 하판이 해운대 방향이다. 관광 자원의 측면에서 볼때 결과적으로 잘못 설계된 셈이다. 다만, 1990년대 후반 건설 당시 해운대는 전혀 개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추후에 천지개벽의 수준으로 화려하게 개발이 될 것이라고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결과가 나왔다. 당시 수영만 매립지, 현 마린시티는 현재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개발될 예정이였으며 광안대교 완공당시에도 센텀시티는 벡스코, 마린시티는 한화리조트만 있던 황무지였으니 당시 부산시민 입장에서는 상판이 용호동 방면인게 당연하였다. 부산시에서도 광안대교의 관광적 측면을 무시하지는 않고 있기에, 상판과 하판의 도로 구조를 바꾸려고 했지만 진출입로 구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보통 전장이 긴 해상교량들이 넓은 바다 위에 걸쳐 있을 경우 공사 난이도나 예산 등을 감안해 사장교로 짓는 게 일반적이나, 본 교량은 특이하게 현수교 형태로 지어졌다. 그 이유는 부산 갈매기의 모습과 파도의 곡선을 이미지화하고 광안리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과 야간 조명에 가장 어울리는게 현수교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현수교는 경간 길이를 넓게 늘릴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강이나 폭이 좁은 해협 위에 교각 없이 다리를 놓기 위한 목적으로 건설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종대교 같은 자정식 현수교가 아닌 이상, 사장교와 달리 양 끝에 케이블을 잡아주는 앵커(Anchorage)가 꼭 필요한 현수교의 특성상 해협 등의 양안에 부설하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하다.
광안대교는 전 구간으로 자동차전용도로이므로 보행자, 자전거의 통행은 금지된다. 오토바이는 긴급차량에 한해서만 통과할 수 있다. 다만 광안대교 걷기행사나 아디다스 마이런 행사, 부산불꽃축제 행사, 1월 1일 해맞이 행사 시에는 일시적으로 광안대교 요금소와 상판, 하판 전체가 통제된다.
광안대교에 인도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흐지부지된 듯. 남항대교와 비슷한 방법(인도를 설치하되, 자동차전용도로 지정은 유지하는 방법)을 이용하려다가 엎어진 듯 하다.
보행도시를 표방하는 전 오거돈 시장이 월 1회 차량통행을 막는 정책을 시행하기로 하였으나 백지화되었다. 교통 체증을 일으키는 차량 통행 차단보다는 인도 설치도 한때 검토하였으나 이 또한 구조적인 문제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특이점
시에서는 단층교량으로 건설할 경우 향후 동부산이 개발되면 교통량을 감당 할 수 없을 거라고 판단하였다. 그 결과 편도 4차선 복층구조로 계획을 변경시켜 국내 최초 복층 해상교량이라는 이름으로 1994년에 착공하여 2002년에 완공하였다. 만일 계획을 변경하지 않고 단층이었으면 광안대교가 아에 마비됐을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관광자원으로 큰 효과를 보고 있다. 대표적인 부산의 랜드마크이며 20세기의 랜드마크였던 부산타워를 잇고 있다. 건설 전에는 '경치를 망친다'느니 '다닐 차가 없다' 느니 하며 말이 많았지만, 다리 자체가 관광자원이 되면서 쏙 들어가버린 상황. 특히 조명이 들어오는 야간에 관광객이 몰려오고 광안대교가 보이는 집의 집값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부산광역시에서 외국인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영문 애칭을 붙이기로 했는데 어째서인지 '다이아몬드 브릿지'라는 다소 뜬금없는 이름으로 결정되었다. 아마도 윗 사진과 같이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인해 밝게 빛나는 모습이 다이아몬드로 박아놓은 것 같이 인상적이라 그렇게 불렸던 듯.
실제로 구글에 Busan을 검색하면 광안대교 사진이 가장 많이 뜨며, 부산의 여러 행사 등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바로 광안대교 엠블럼.
디지털부산카드의 초도발행분은 부산타워였는데, 이 당시엔 광안대교가 공사 중이었다. 순수 로컬 교통카드의 마지막 버전인 하나로카드 최후기형은 표면에 광안대교가 인쇄되었다. 전국구가 아닌 로컬형 선불교통카드의 경우 보통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를 거의 100%의 확률로 넣는다.
사직 야구장의 경우에도 전광판을 교체하면서 부산시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광안대교를 선택하여 반영하였다.
이야기거리
매년 부산불꽃축제도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한다. 부산불꽃축제는 2005년 APEC 정상회의 축하를 위해 일회성으로 광안대교 일대에서 불꽃축제를 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반응이 너무 좋아서 2006년부터 부산불꽃축제로 격상하여 매년 가을에 진행해왔다. 부산시에서 2008년 고유가 시대에 맞춰서 광안대교 점등 시간을 확 줄이자 광안리 주변 음식점부터 멀리 달맞이 요식업체, 관광선까지 매출이 팍팍 떨어지고 엄청난 항의전화를 받은...
Read moreThe Gwangandaegyo (Korean: 광안대교) or Diamond Bridge is a suspension bridge located in Busan, South Korea. It connects Haeundae District to Suyeong District. The road surface is about 6,500 meters long, with the bridge as a whole spanning 7,420 meters. It is the second longest bridge in the country after the Incheon Bridge. Construction began in 1994 and concluded in December 2002, with a total cost of 789.9 billion won.[1] The bridge opened temporarily in September and October 2002 for the 2002 Asian Games. However, it was not officially opened until January 2003. The bridge made international headlines in February 2019 when a Russian cargo ship (which had just left from the Port of Busan and was heading to Vladivostok) crashed into the bridge. As a result, a five-metre wide hole was torn into the lower part of the bi-level bridge, but there were no injuries reported. The ship's captain was allegedly inebriated at the time of the crash, which may have contributed to...
Read morePromotion of Gwangan Bridge. This theme is selected to promote Korea's Beautiful Gwangan Bridge to foreigners and various visitors to Korea. In Gwangan Bridge, there are Fireworks festival and busking called the folwer of Gwangan Bridge. In particular, the fireworks festival held every october is very amazing. There are also drone festivals ang graffiti festivals that have not been popularized. And there are many cafes and restaurants you can enjoy various foods. I hope you read this article and visit Gwangan Bridge atleast once in your life and have a good experience. Thankyou f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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