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과 서울시 의회 건물 사이에 있는 성공회 서율교구 주교좌 성당. 예쁘고 고즈넉하다. 민주화 항쟁과 관현하여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은 곳.
이하 나무위키의 설명https://namu.wiki/w/%EC%84%9C%EC%9A%B8%EC%A3%BC%EA%B5%90%EC%A2%8C%EC%84%B1%EB%8B%B9
개요 서울주교좌성당 외관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 (정동)에 자리한 성공회 서울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주보성인은 성모 마리아와 성 니콜라.
이 대성당의 전신은 현 대성당 위치에 있던 한옥성당인 장림성당이다. 강화도, 충청도에 있는 한옥성당 양식은 옛 장림성당에서 파생되었다.
성당의 정식 명칭은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聖公會 서울主敎座聖堂)이고, 주교좌성당을 보통 대성당이라고 하기 때문에 줄여서 '성공회 서울대성당' 또는 그냥 '서울대성당'11으로 부르기도 한다. 성당의 위치가 중구 정동이기 때문에 성공회 정동교회·정동성당으로 부르기도 한다.[13]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을 기본으로, 기와지붕이나 한옥 창살, 오방색 등과 같은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절충한 성당이다.[14]
향린교회와 함께 1987년 6월 항쟁이 시작된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 중 하나이다. 명동성당에 가려진 성당과 교회
1978년 성공회 서울성당(聖公會 서울聖堂)이라는 명칭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됐다.[15] 문화재[16]로 지정된 만큼 방문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성당이 개방되어있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되며, 봉사자의 가이드 아래 대성당을 둘려볼 수 있다. 때론 담당 부제(Deacon)의 설명하에 성공회의 전반적인 것들도 들을 수 있다.
시청역 3번 출구에선 도보로 3분, 광화문역 6번 출구 기점으론 걸어서 7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가급적이면 시청역 3번 출구(1호선)로 나오는 것을 권장한다.
역사 "이미 남대문으로부터 경복궁까지 대로가 준공되었으매 이제 건축하고자 하는 새 성전이 미려한 위치를 점령하겠고 성내 4면이 보이기 쉽겠도다" 《조선성공회월보》69호(1914년 3월) 1890년 12월 21일, 당시 조선에 성공회 선교를 위해 영국으로부터 파송된 찰스 존 코프 주교[17]와 신자들이 현재 성당이 위치해 있는 곳의 한옥을 매입하면서부터 서울대성당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성당의 이름은 “장림성당(The Church of Advent)”이었다. 이후 1892년 11월 17일 같은 자리에 새 한옥을 짓고 축성식을 거행했다. 이후, 1909년 성당 주변의 땅을 매입해 부지를 확장하고, 1910년 열린 첫 교구회의에서 주교좌성당 건축을 결의하게 된다.
이후, 1911년 영국왕립건축협회 소속의 아서 딕슨에 의해 성당의 설계도 및 모형이 완성되었고, 1922년 9월 24일, 성당 건축을 시작한다.[18]
1950년대 발행된 듯한 엽서에 인쇄된 서울주교좌성당의 모습. 현재 성당과 비교했을 때 건물의 길이가 짧다. 맨 위의 성당 전체사진 오른쪽 긴 지붕의 색깔이 짙어지는 지점이 있는데, 실제로 다른 시기에 공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붕 색깔이 짙은 오른쪽 부분이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증축되었는데, 1926년 당시 재정 문제로 애초 설계와 달리 밝은 주황색 부분만으로 완공되었으며, 그 앞에는 작은 연못과 정원이 있었다. 대성당 측은 1991년에 본 성당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원안대로 증축을 하기 위해, 건축가 김원을 총감독으로 선임하여 논의를 진행했다.[19] 원 설계도를 찾을 수 없어서 김원이 현대적인 스타일의 증축설계안을 내놓았는데, 문화재 당국은 물론이고 대성당 측도 당연히 반대하며 논의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993년, 영국에서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던 원 설계도가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우연찮게 발견[20]되면서 문화재의 가치를 살리면서도 성당의 기능도 확장하는 증축을 할 수 있었다. 김원이 직접 해당 도서관까지 가서 딕슨의 원 설계도를 복사해 국내로 들여왔고, 그 설계도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직접 보완설계하여, 딕슨이 의도했던 바를 거의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증축 시공은 대우건설이 맡았다.[21] 기왓장은 전통 방식으로 제작되었으며, 원 건물은 강화도산 화강암을 썼으나 증축 당시에는 사정상 어쩔 수 없이 강화도산과 제일 비슷한 중국 칭다오산 화강암을 수입해서 써야했다.
2015년 이전에는 서울지방국세청 남대문별관이 세종대로와 성당 사이에 있었으나 2015년 5월에 철거되었다. 이에 따라, 세종대로에서 바로 성당이 보이게 되었다.(오마이뉴스 기사) 이후 잇따라 관공서 건물이 낮은 저층 건물로 대체되어 이제는 대로변에서도 성당의 전경이 거의 다 보인다. 이전에도 정동의 명소 중 하나였으나 인지도가 더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성공회의 '어머니 성당'[22]으로 인식되고는 하지만 꽤 좁은 부지에 지어졌다.[23] 주차장 규모도 협소하여 성당에서 감사성찬례가 끝나고 광고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광고를 늘 할 정도로 부지가 좁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대축일 때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신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조그마한 주차장에 빼곡히 차가 들어차...
Read moreI had two wonderful services in your church. Thank you for your hospitality and the pleasant conversations over coffee, tea and pastries. I was given a very friendly welcome!I wish you a good week, a nice autumn and winter, a nice fair on All Saints Day, a wonderful inspiring Advent season and of course a beautiful Christmas service. See you again in one day, maybe next year or in...
Read more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 또는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있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성공회 대성당이다. 성공회 신자들은 줄여서 서울대성당이라고 부른다.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1978년 12월 18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서울대성당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의 교구장의 주교좌가 있는 주교좌 성당이고, 현재 교구장은 2017년 4월 25일에 서울교구장에 착좌한 이경호(베드로) 주교이고, 주임 사제는 주낙현(요셉) 신부이다. 서울대성당의 주보 성인은 성모 마리아와 성 니콜라우스이다.
1922년에 당시 대한성공회 3대 주교인 마크 트롤로프(한국이름 조마가)가 주도하고, 영국인 건축가 아더 딕슨이 설계를 하여 대성당 공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자금 문제 등 여러가지 사정으로 1926년에 부분 완성이 되었다. 미완성인 상태로 70여 년을 사용하다가, 1994년 성당 창립 100주년 기념으로 증축 공사를 시작하여 1996년 현재의 모습으로 완전히 공사를 마쳤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면서도 처마장식, 기와지붕에는 한국의 건축 양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1978년 12월 18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이 되었고, 1987년 6월 10일에는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항한 민주화 운동인 6월 항쟁이 시작된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대성당 주변에는 대한성공회 성가수도회, 덕수궁, 서울특별시청, 서울신문 본사, 조선일보 본사, 주한 영국대사관, 서울특별시의회, 주한 미국대사관 등이 위치해있다.
그리고 대성당 바로 옆에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에 대한성공회가 매입하여 덕수궁에서 옮겨진 경운궁 양이재가 위치하고 있다. 양이재는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267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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