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에 있는 계동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기 전 북촌을 헤매기로 했는데 정말 덥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배렴가옥으로 들어간다.
배렴가옥은 원래 동양화가 배렴선생이 돌아가신 해 1968년까지 사셨고 그 이후 후손이 잠시 살다가 북촌 게스트하우스로 활용되던 곳인데 2004년 국가등록유산으로 등록한 후 서울도시주택공사에서 관리하는 곳임. 현재는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공간,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상주하는 문화해설사가 배렴가옥에 대한 해설도 재미있게 해주는 곳임. 아담한 전통 한옥의 목조 기와집으로 3동의 건물이 ㅁ자형 구조를 이루며 1940년에 지어진 연면적 약 129제곱미터(약 39평)의 전형적인 도시형한옥.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무이고 국가공인휴무일도 휴관. 다만 주말에도 문을 열고 있으니 시간나는 사람들은 주말에 고고.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도시형한옥은 우리 역사상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건설사업가이면서 민족주의사업가였던 정세권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1930년대 이후 일본인들이 청계천을 중심으로 남쪽에 있던 명동, 남산, 을지로, 충무로 등의 남촌에 살다가, 원래 고관대작들의 거주지로 유명한 북촌(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쪽에 잇는 가회동, 계동, 삼청동, 안국동, 원서동 일대)으로 진출하면서 서울 중심의 부동산 가격 폭등을 불러오자 정세권은 건양사라는 부동산개발회사를 창업해 기존 한옥을 개조한 도시형 한옥을 짓기 시작한다. 도시형 한옥은 기존 한옥의 면적을 대폭 줄여서 배치를 바꾸고, 전기와 수도를 사용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도모하는 등 실용적인 한옥을 설계하고, 북촌 일대의 딸을 매입해 도시형 한옥촌을 건설한 후 분양했다. 지금의 익선동 일대와 가회동을 포함한 북촌 일대의 한옥 마을초이 그의 결과물임. 연납, 월납 형태의 금융지원을 해주면서 도시형 한옥은 서울에만 6천 채에 이르렀음. 주택의 생산양식의 변화로 인해 주택생산의 대량화가 가능했고 대량화를 위한 규격화와 표준화도 가능했던 주택산업의 근대화가 이뤄짐.
도시형 한옥은 특징은 일단 좁은 땅 위에 지어져서 ㄷ형이나 ㅁ형인 경우가 많다. 혹은 ㄱ형과 ㄴ형이 만나 ㅁ형을 만들기도 함. 옛 한옥은 재료를 돌이나 흙, 나무 등을 이용하여 지었다면, 당시 상황에서는 저렴 함석을 이용한 빗물받이, 유리를 활용한 창 등을 이용했음. 한옥에는 원래 중정에 나무를 심지 않았는데, 시대가 바뀌면서 풍수지리의 개념이 약해지고 후원이 없는 도시형 한옥에서 나무나 풀, 꽃을 보기 원하는 주민들이 나무 등을 중정에 심기 시작했음.
암튼 문화해설사님의 이야기도 듣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던 배렴가옥. 현재 배렴가옥의 함석 빗물받이가 용이나 물고기 등을 연상할 수 있었는데 옛 자손들의 증언에 의하면 지금보다 더...
Read more계동 배렴가옥 Bae Ryeom's House in Gye-dong 지정번호: 등록문화재 제85호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길 89
계동 배렴가옥은 화가 제당 배렴(1911-1968)이 1959년부터 생애 말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배렴은 청전 이상범을 사사하고 전통 수묵 산수화의 맥을 이었다고 평해진다. 배렴이 살기 전에는 송석하(1904-1948)가 살았었다. 송석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상민속학자이자 국립민족박물관을 설립한 인물인데, 1937년에 이 집에 입주하면서 이곳을 조선민속학회의 사무실로도 썼다. 이 가옥이 위치한 가회동 일대는 대규모의 토지를 작게 분할한 택지들 위에 도시한옥이 빽빽하게 들어선 지역이다. 배렴가옥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마주보는 튼ㅁ자형 한옥이며, 1936년에 지었다고 추정된다. 지금의 대문 밖 화단에는 본래 사랑채로 이어지는 솟을 문과 사랑마당이 있었으며, 대문을 들어설 때 안채가 들여다보이는 것을 막아주도록 내외담(사잇담)이 있었다. 이 집은 배렴 사후에 여러 차례 소유주가 바뀌었다가, 2001년에 서울 주택도시공사가 매입한 이후 2016년까지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었다. 현재 계동 배렴가옥은 문화예술공간으로 시민에게 개방되고 있다.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No. 85 Address: 89, Gyedong-gil Jongno-gu, Seoul This is the house where modern Korean painter Bae Ryeom (1911-1968) lived from 1959 until his death. Previously, Korea's first archivist, Song Seok-ha (1904-1948), lived in this house and used it as an office of the Korean Folklore Society. It has a 口-shaped open-rectangular plan with 7-shaped and L-shaped buildings facing each other, and it is believed to have been built in 1936. Today, Bae Ryeom's house is a public venue for art...
Read moreA quick stop. View from outside only. Admire the traditional cultural el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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