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정은 양화대교 북단, 즉 양화진 서쪽 강변북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한강의 경치를 서남향으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이 정자는 조선시대의 많은 선비들이 즐겨 찾던 명소 중의 하나였다.
망원정 자리는 원래 조선 4대 왕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세종 6년(1424)에 마련하고 약간의 농사도 지으며 즐기던 곳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세종 7년(1425)에 가뭄이 계속되자 농민의 삶을 살피기 위해 서쪽으로 나왔다가 이 정자에 올랐는데, 마침 비가 내려매우 기뻐하며 정자 이름을 '희우정(喜雨亭)'이라고 지어 주었다고 한다.
효령대군은 왕이 행차한 것은 물론 정자의 이름까지 지어준 것에 감사하여 글씨로 이름을 날리던 부제학 신장(申檣)에게 글씨를 쓰게 하고 문장을 잘 짓는 변계량(卞季良)에게 내용을 기록하도록 하였다. 이글은 《동문선》에 〈희우정 기문〉으로 실려 있다. 변계량은 기문에서 “희우정의 제도는 사치하지도 않고 누추하지도 않다. 북악이 뒤에서 굽어보고 한강이 앞에서 흐르는데, 서남쪽의 여러 산들이 막막하고 아득하여 구름·하늘·연기가 물 밖으로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하다. 굽어보면 물이 맑아 물고기ㆍ새우도 역력히 셀 수 있다. 바람 실은 배의 돛과 모래 위의 새들이 바로 정자 아래서 오가고, 천여 그루의 소나무는 푸르고 울창하여 술상 위에 어른거린다. 여기에 풍악 소리가 요란하고 맑은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니 황홀하여 날개가 돋아 푸른 하늘로 오르는 것만 같다. 마음이 자유스러워져서 바람 타고 신선세계에 노는 것만 같다. 눈이 아찔하고 머리털까지 곤두서는 듯하다.” 고 칭송하였다.
세종은 그 후로도 수차 희우정에 들러 서교(西郊)에서 벌이는 군사들의 방포·말타기·활쏘기 등 훈련을 친히 사열하고, 시를 짓고 그림도 그리게 하였다. 이 당시 따라왔던 안평대군이 그린 이 지금 일본 덴리쿄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그 후 성종 15년(1484) 성종의 형 월산대군이 퇴락한 희우정을 효령대군으로부터 얻어 고쳐 짓자 성종이 '望遠亭(망원정)'으로...
Read moreIt's a nice place, Mr. Sung brought me here. A 25 minutes walk from the church. Need to take off the shoes & taking off the shoes after 1 day in it feels heaven. After we head back to the nearest subway...
Read moreA interesting place to see the hangang-river and the busy expressway, from a site with history. Good stopover on way to Mang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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