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동안 씁쓸했던 마음을 가늠치 못하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써서 올리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제3자가 보지못하도록 글을 올리지 않는 구글의 선택적 처사에 강력하게 항의를 표시하면서 이 글 또한 제3자가 볼 수 없도록 선택적으로 차단하는지 여부를 지켜 본 후 구글의 그런 조치가 계속 이어진다면 더 이상 구글에 글을 올리지 않을 각오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2월 초순. 아직도 추위가 물러서지 않은 토요일 날 오후. 고향 친구 서너명과 함께 낙산 성벽 둘레길 탐방에 나섰습니다. 흥인지문 동대문과 치를 둘러본 후 한양 도성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타산(줄여서 낙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둘레길 탐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둘레길 탐방에 앞서 사전 지식을 얻기위해 홍순민의 '한양읽기 도성' (눌와 출판사)을 참고하고 유홍준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출판사 창비)를 정독한 후 나서는 길이지만 부족한 것이 한 둘이 아닙니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면서 내산인 백악산을 주산으로하고 백악산 앞에 경복궁을 정궁으로 자리한 후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과 주작에 해당할 목멱산(남산), 우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을 잇고 다시 백악산으로 이어지는 도성을 쌓은 것입니다. 하나의 통치 국가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궁궐과 도성만으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조선의 통치이념과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할 종묘와 사직이 필요한데 종묘는 좌청룡 자리에 사직은 우백호의 자리에 위치함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완성된 국가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낙산 도성 탐사길은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 능성 위로 이어지는 도성을 둘러볼 예정인데 동대문에서 시작하는 낙산 성곽길은 성곽 바깥 둘레길과 도성 안쪽으로 난 둘레길이 있어 각각의 둘레길 나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도성 안길을 선택했든 도성 바깥길을 선택했든 탐방하는 도중 조금 지루하다 싶으면 군데군데 성안과 밖으로 연결해 놓은 통로를 이용하면 도성 안길과 바깥 길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산 능선길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그리 힘들이지 않고 정상에 다다를 수 있는데 이동하는 중에 성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장구한 조선 500년 통치기간과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성을 쌓은 역사가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조선 건국 당시인 태조 이성계 시절 쌓았던 성벽의 축조기술과 축조석재의 모습(태조 때에는 한시라도 빨리 도성을 구축하기 위해 상당 부분은 토성으로 이루어졌었다고 합니다)과 국가의 기틀이 어느정도 자리한 세종때 축조한 석재의 모습이 선명하게 대비됩니다.
이후 여러 왕들의 통치기간 중에도 도성을 수리하거나 보수공사가 꾸준히 이루어졌지만 눈에 띨 정도로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한 것은 광해군 때 임진왜란으로 인한 도성 보수공사가 있었고 그 후로는 기록에 남을만한 보수공사가 없다가 숙종 때에 이르러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이루어 졌음이 성벽에서 찾을 수 있고 마지막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순조때에 이루어졌는데 숙종때와 순조때 도성 보수공사에 사용된 석재료는 정방형에 가까운 큼지막한 화강암을 이용하여 보수한 흔적이 금방 알아차릴 정도로 눈에 띱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광해군 이후 숙종때까지 도성을 수리한 기록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데 그 까닭은 인조때 후금(나중에 청나라로 국호변경) 홍타이지(청태종)의 친정으로 인한 군신관계를 맺은 일명 삼전도 굴욕의 항복 조건 때문입니다. 항복조건 중 하나가 도성이나 방어용 성곽을 신축하거나 개보수를 할 수 없도록 맺은 것입니다. 즉, 도성을 쌓거나 개보수를 하는 행위는 청나라에 대항하는 적대행위에 해당되므로 감히 도성을 수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것입니다.
북벌을 최우선 국정목표로 정해 내세웠던 효종은 물론이고 조선을 사실상 통치하던 집권세력인 서인(나중의 노론세력)들 또한 내심 북벌을 원하지 않았기에 청나라 비위를 거스를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랬던 도성 성벽이 일제강점기와 대한민국 산업근대화 시절을 거치며 허물어지거나 방치된 성벽을 지금의 헝태로 복원하면서 한양도성 성벽이 그나마 역사의 기록물이 되다시피 보존된 것입니다.
낙산 도성길을 걷다보면 성벽 군데군데 놀라울 사실이 아로새겨져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름아닌 조선 건국 당시 한양도성을 신축하면서 건축 실명제를 실시했다는 사실입니다. 기록에 의한면 도성을 쌓기위해 각 지방에서 공역을 동원받아야 했는데 어느 구간에서 부터 어느 구간까지는 경상도인, 어느 구간에서 어느 구간까지는 호남인이, 어느구간에서 어느구간까지는 관서인이 성벽을 쌓도록 각 구간마다 할당을 하고 그 구간 구간 마다 성벽을 쌓은 책임자의 이름을 각인하도록 한 것입니다.
각자가 맡은 구간에 부실공사가 있을 시에는 그 책임을 엄중히 묻는 건축실명제를 조선 초에 실시했다는 것은 대단히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 건축실명제가 정조가 수원에 새로이 신축한 화성 성벽에도 적용되었음이 화성 성벽에서도 재확인되고 있습니다. 낙산 성벽을 따라 걷는 것도 조금 지겨우면 도성안길 성벽옆에 자리한 커피샵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도 도성길을...
Read moreThe walk here is certainly uphill, but it's all either paved or on well-maintained paths, so I wouldn't call it a hike. The views here are nice, but certainly not among the most impressive you'll find on other mountains throughout the city. But the views are good enough, the walk here is pretty tame compared to other mountains in Seoul, you get to walk along the city wall on your way to the summit, and it's relatively peaceful here. So if you have some time, this is a...
Read moreGood place for a walk, from the top of this park you can enjoy the beautiful view of the city. Recommendation - better to visit this place during sunset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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